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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산조 ‘이영희’ 편 (1) - 자연스럽게 가야금도 하고 싶더라고
작성일 : 2022-12-06 조회수 : 714
(이영희 ‘가야금 산조’ 中)

이영희 육성 // “이조 말엽에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하는 바탕소리를 남자들이 했지 않느냐. 그런데 남자들이 하던 소리를 어른들이 목이 이제 다해서 그 소리를 할 수 없을 때 병창으로 그 소리를 표현하다가, 병창만으로는 자기가 과거에 그 시시상청 내던 그 오묘한 성음을 병창으로는 어렵구나 싶어서 가야금 줄에 얹져 놓은 게 산조다. 그러니까 소리하듯 가야금을 해야 돼.”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가야금 산조, ‘이 영 희’.
제1화, 자연스럽게 가야금도 하고 싶더라고.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구술 채록한 자료를 바탕으로
EBS가 오디오 자서전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풍물패 따라다니던 군산 고무신집 막내>
#1. 1945년 해방 직후, 군산 영동 거리, 고무신 가게(집 1층)


(광복을 맞은 거리) (만세소리, 군중 소음 등)
어머니 // (광복으로 기분 좋은) 어서 오세요!
아이 영희 // (따라서 밝게) 어서 오세요!
어머니 // 오늘같이 기쁜 날, 첫 손님으로 오셨네요. 손주 고무신, 또 바꿔 주시려구요?
손님// (기분 좋은) 그려. 이 표딱지 하나랑 헌 고무신 하나 주면 되는가?
어머니 // 네, 주시면 새 고무신으로 바꿔드릴게요.
손님// 소식 들었지? 일본이 항복했다고, 그래서 해방이 될 거라고, 군산 거리가 난리네 난리여!
어머니 // 저도 오늘은 고무신 장사 접고 애들이랑 나가봐야겠어요.
손님 // 오~ 얘가 막내지? 5남맬 뒀던가?
어머니 // 네, 딸 넷에 아들 하나요. 영희야, 인사 드려라.
아이 영희 // 안녕하세요?
손님 // 우리 손주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네.
어머니 // 여덟 살인데, 막내라 그런지 저한테서 떨어지지를 않네요. 첫째 딸은 스물둘이나 됐지요.
손님 // 아이구, 다 키웠네.
어머니 // 에휴 5년 전에 남편 떠나고 어떡하나 했는데, 그래도 길이 생기네요.
손님 // 높은 양반댁 며느리가 장사를 참 야무지게 해. 그러니 2층집도 마련했지. 자식 교육에도 열성이구 말야.
어머니 // 시대가 변했으니 딸이건 아들이건 많이 배워야죠. 하고 싶은 거 다 시키려구요.


이영희 육성 // “저희 오춘 되시는 아버지 사촌 동생이 군산에 경성고무 주식회사가 있어요. 경성 고무. 옛날에는 만월표 고무신이 호남 지역에서는 만월표 고무신 안 신고 산 사람이 없어요. 저한테는 아저씨뻘이죠. 아버지의 사촌이니까. 그분이 거기서 군산에서 만월표 고무신 공장을 했어요. 그러니까 저희들이 학교는 갈 수 있었을 거예요.”


#2. 1940년대 후반, 아침, 군산 2층 집

걸인1 // (밖에서 외치는) 잘 사는 양반네들, 밥 좀 주소!
걸인1,2// 밥 좀 주소!
♬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

(방문 열고 닫는 소리)
아이 영희 // (급히) 오빠, 오늘도 각설이들이 왔어!
오빠 // (심술쟁이) 그래? 너도 각설이 타령 부르면서 춤춰봐.
아이 영희 // 잘 알아야 하지.
오빠 // 그럼 내가 할테니께 따라 해!
♬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
아이 영희 // (무서워서 억지로 하는)
♬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
오빠 // (윽박지르는) 또 해봐. 또!
아이 영희 // 싫어. 이제 그만 할래!

(방문 쾅 닫는 소리)

어머니 // 영희야, 또 어디 갈라구? 명절이라 식구들 다 모여잖니. 밥 먹고 가!
셋째 언니 // 놔두세요. 엄마. 겨우 3살 많은 오빠한테 또 쥐어터지고 도망가나봐요.
아이 영희 // 아냐, 언니! 오늘은 안 맞았어. 나 풍물패 보러 나가는 거야!
셋째 언니 // (귀여워서 놀리는) 그래서, 하루 종일 졸졸졸졸 따라 다니려구?
아이 영희 // (멀어지며) 몰라. 나갔다 올게!

(풍물패(농악패) 놀이 소리)

이영희 육성 // “보통 군산 같은 데는 정월 보름이나 추석 때 되면 풍장꾼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풍장해서 지신 밟아주고, 그러고 쌀도 받아가고, 돈도 받아가고, 집집마다 들어가요, 열려 있는 집에는. 그럼 밤새 그 뒤를 쫒아다니면서 구경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되려고 제가 그렇게 그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나는 소질이 있다기보다는 그 모습이 좋아서 흉내 내다 보니까 이 길에 들어서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이 되고 군산만 해도 도시는 조그맣지만 일정 때 다 부자로 잘살고 그런 사람들이라서 집집마다 누구 생일이면 예인들을 불러다 놓고 놀고 잔치하고 그런 모습들이 항상 눈에 보이니까 거기서 항상 구경하고 놀고먹고 하다 보니까 자연적으로 그런 예인들의 놀이에 심취해가지고.


<배우고 싶은 건 다 배웠어요>
#3. 1950년대 초반, 군산, 도금선 춤 공연

(승무 음악)
친구1 // (춤 구경하면서 재잘재잘) 영희야, 어때? 정말 멋지지? 승무 추시는 저 어른이 군산서 젤 유명한 기생이래. 도금선이라는 분인데 내 춤 선생님하고도 잘 아나봐. 그리고 우리 선생님 이름은 김향초! 이분도 기생이셨는디, 우리 엄마보다 연세가 많아. 어? 영희야. 왜 대답이 없어?
영희 // (넋 놓고 보다가) 어? 방금 뭐라고 했어? 나 춤 보다가 못 들었어. 미안...
친구1 // 아휴~ 너두 승무에 홀딱 반했구나. 지난주부터 애자도 김향초 선생님한테 배우고 있어.
영희 // (부러운 듯) 진짜? 친구1 // 응. 지금은 승무 배우고 있는디, 인쟈 수건춤도, 바라춤도 가르쳐주신디야.

소녀 영희 // 중학교 다니던 열네 살 때였어요.
6.25 전쟁이 나자 잠시 시골 이모 집에 피난을 다녀왔는데,
그때도 예인들의 춤과 소리는 끊이지 않았어요.
어느 날, 전 승무 공연을 보게 됐고 한눈에 반했지요.
게다가 친구들은 이미 춤을 배우고 있다니 너무 부러웠어요.


#4. 1950년대 초반, 군산 2층 집

영희 // (조르는) 어머니, 요즘 젤로 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나두 승무 배우고 싶어요!
어머니 // 그래? 하고 싶은 건 해봐야지.
그럼 승무 출 때 입는 장삼 좀 빌려와볼래?
영희 // 왜요?
어머니 // 승무는 장삼을 입고 해야지.
엄마가 옷감 떠다가 그 장삼 모양 고대로 본따서
니 몸에 맞게 만들어줄게.
영희 // 진짜요? 고맙습니다!


이영희 육성 // “저희 어머니는 조금 깨인 분이야. 그러니까 당신이 가게를 하고 장사를 하다 보니까 그런 춤 배우고 소리 배우고 하는 게 흉으로 생각지 않는 거야. 다른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부모님이 말려서 못 했다, 부모님 눈을 피해서 도망 와서 배웠다, 그런 얘기를 저는 가끔 들었는데, 저는 어머니가 시키더라고. 하겠다면 하라고. 어머니가 그렇게 밀어주셔서 스무스하게 시작한 거예요.”


(2층 목조집 현관 문 여는 소리)
영희 // 다녀왔습니다!
어머니 // 영희 왔니? 오늘은 김향초 선생님한테 춤 뭐 배웠어?
영희 // 바라춤도 추고, 악기도 배웠어요.
어머니 // 가야금 처음 타봤겠네?
영희 // 네, 소리가 예뻐요. 처음이지만 배울수록 재밌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가야금 잘 타시는
다른 선생님도 좀 구해주시면 안 돼요?
가야금도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요.
어머니 // 그럴래? 우리 막내, 하고 싶은 건 다 해야지.
음... 마침 가야금 배우러 전주서 군산까지 오는 부인이 있는데
이덕열 선생인가? 그분한테 다양하게 배우는 것 같더라.
영희 // 빨리 물어봐주세요. 춤, 소리, 악기, 다 배워보고 싶어요.


이영희 육성 // “제가 이덕열 할아버지 뵌 거는 완전히 허허 호호 할아버지 때 봤어요. 이분은 농사를 짓고 사는 중인인데, 좀 살기가 넉넉하니까 사랑채에 율객들을 불러 놓고서 항상 율을 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니까 풍류를 한 거죠. 옛날 풍류하시는 분은 당신 사랑방에 율객들을 다 모아서 한 번씩 만나서 그저 즐기시고, 또 농사할 때는 농사도 짓고. 그 어른이 하는 건 다 배웠어요.”


#5. 1950년대 초반, 군산, 권번

영희 // 계세요? 저 여기가... 권번 있던 곳 맞지요?
악기 가르쳐주는 데 말이에요.
이운조 // 그런데 무슨 일이냐?
영희 // 제가 가야금 산조를 배우고 싶어서 왔어요.
이운조 // 그래, 몇 살이나 먹었나?
영희 // 중학교 3학년이에요.
이운조 // 그럼, 이전엔 뭘 배웠지?
영희 // 김향초 선생님한테는 춤을 배웠고,
이덕열 선생님한테는 풍류 음악을 배웠어요.
가야금, 단소, 양금, 다 할 줄 알아요.
그런데 이젠 가야금 산조가 하고 싶어졌어요.
이운조 // 내가 여기 잠시 왔는데 인연이 되려나. 널 만났구나.
가야금 산조라면, 내가 가르쳐주마.
영희 // 감사합니다. 그런데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이운조 // 내 이름은 이운조! 가야금도 하고 거문고도 하지.


소녀 영희 // 전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선생님을 찾아다녔어요.
이운조 선생님께는 2년 동안 가야금 산조를 배웠어요.
춤과 소리, 가야금을 비롯한 악기를 배우면서도
학교도 잘 다니고 공부도 열심히 했지요.


(2003년 KBS 여성국극 원로 특집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中)

소녀 영희 // 그런데 딱 한 가지! 이 구경만큼은 다른 것과 바꿀 수 없었어요.
여성 소리꾼만 출연하는 창극인 여성 국극단이 오면 전 무조건 극장행이었지요.

(이난영 / 목포의 눈물)

소녀 영희 // 그렇다고 제가 국극이나 판소리만 좋아한 건 아니에요.
신민요나 유행가를 부르는 악단이 와도 얼른 달려갔거든요.

이영희 육성 // “원체 극 보는 걸 좋아해서 가극단도 다 구경했어요. 전옥이라고, 옛날에 그분이 나오면 ‘눈물의 여왕’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그렇게 우는 역할을 잘하셨어요. 연극이 굉장히 신파적인, 신파극이었죠. 그러다가 노래도 나와서 부르고 그런 것도 하면서 이난영 씨 소리하는 것도 보고, 장세정 씨 노래하는 것도 보고, 신카나리아 씨 노래하는 것도 보고,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될라고 이렇게 극 보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이화여대 사회학과 입학, 김윤덕 선생님을 찾아가다>
#6. 1958년, 서울, 덕성여대 장사훈 교수실

장사훈 // 그래, 이화여대 사회학과 다니는 이영희 학생이
덕성여대 국악과 교수인 날 무슨 연유로 찾아왔나?
영희 // 역사를 좋아해서 사회학과를 택하긴 했는데.
가야금 산조를 계속하고 싶어졌어요.
혹시 선생님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장사훈 // 가야금 산조라면 김윤덕 선생이 좋겠어.
가야금 정악, 거문고 정악 익힌 다음엔
정남희 명인에게 가야금 산조를,
한갑득 명인에겐 거문고 산조를 전수받았지.
지금은 국립국악원 국악사로 있네.
영희 // 그럼 국악원으로 찾아뵈러 가면 될까요?
장사훈 // 아니, 바로 근처에 살아. 여기 담 스쳐서 운현궁으로 가면 되네.

(김윤덕류 가야금 산조)
이영희 육성 // “당시에 김윤덕 선생이 운현궁, 옛날로 치면은 행랑채에 연구소를 하고 계셨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박찬주 여사, 그러니까 대원군 대감님의 손자며느리인 것 같았어요. 박찬주 여사님이 아드님이 둘이었는데 작은 아드님이 국악원 가서 가야금을 배운 거야. 김윤덕 선생이 거기서 사범으로 있을 때 박찬주 여사의 아드님이 와서 거기서 배웠나봐. 그러니까 박찬주 여사가 “내 귀한 아들을 외부에 가서 가르치게 할 수 없다. 차라리 선생을 우리 행랑채에 살게 해라” 해가지고 김윤덕 선생님이 그 행랑채에서 연구소를 한 거야. 그래서 제가 그 행랑채에서 가야금 산조를 배운 거예요.”


청년 영희 // 대학 1학년 때인 1958년,
그렇게 김윤덕 선생님과의 소중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 마무리 코너- 덧붙이는 이야기 >

(징소리)

나레이션 // ‘덧붙이는 이야기’

(이영희 ‘가야금 산조’ 중 ‘진양조’)
나레이션 // 여러분은 지금, 오늘의 주인공인 이영희 보유자가 연주한 가야금 산조 중 중단계의 빠르기인 중모리 장단을 듣고 계십니다.
전남대학교 국악학과 이용식 교수로부터 가야금의 유래와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이용식 // 가야금이라는 악기는 가야에서 만들어진 악기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오래된 거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 중에 하나고요. 가야금이 가야에서 만들어진 이후에 가야가 신라에 병합이 되면서 신라에서 널리 퍼지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그런 악기로 성장하게 됐고요.
우륵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우륵은 원래 가야 나라의 가야금 연주자였는데 가야가 멸망할 때가 돼서 가야금을 들고 신라에 투항을 하게 돼요. 그래서 그 당시에 진흥왕이 우륵을 아주 나라의 그런 음악가로 추앙을 하고 그러면서 신라 사회에서 널리 퍼지게 되면서 가야금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그런 악기로 성장하게 됐죠.

나레이션 // 이영희 보유자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은 가야금 산조 및 병창입니다. 가야금 병창과 가야금 산조에 대한 설명을 이용식 교수로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이용식 // 사실 예전에는 판소리 명창들이 판소리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모든 악기를 다 잘했어요.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소리를 할 줄 알고 어떤 악기든지 다 잘 다루시기 때문에 판소리 명창들이 그냥 악기가 없으면 판소리만 하는 거고 거기에 자기가 연주를 갔는데 가야금이 있다. 그러면 가야금으로 반주를 하면서 마치 가수들이 노래를 하다가 기타가 있으면 기타 반주를 하듯이 하면서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같이 한다, 그래서 병창이라는 그런 이름이 생겨난 거죠.
그런데 사실 병창이라는 음악은 가야금만 하는 게 아니라 거문고나 해금을 연주하면서 판소리를 하면 거문고 병창, 해금 병창이 되거든요.
그런 병창이라는 음악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 같고요. 가야금 산조는 보통 19세기 말 정도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사실 독주 음악이 많지 않아요. 대부분 합주 음악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음악하는 사람들이 연주를 많이 하는 경우가 사실은 굿판입니다. 무당들이 굿을 할 때 반주 음악을 늘 연주를 하거든요. 그런 음악을 흔히 전라도에서는 시나위라고 하는데 시나위 연주를 잘 하던 음악가들 중에서, 밴드도 그렇잖아요. 처음에는 다 같이 밴드로 네다섯 명이 하다가 나중에 나만의 독자적인 음악을 하고 싶어, 하면서 솔로로 나가는 경우랑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래서 독주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게 가야금의 독주 음악을 처음 만듭니다. 가야금으로 판소리의 음악 어법을 본떠서 판소리에서 연주하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장단에 가야금 음악을 만든 것이죠.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가야금 산조, 이 영 희. 첫 번째 시간.
지금까지 극본 김정인, 연출 권윤혜,
출연 홍소영, 전해리, 오민혁, 한만중, 이한솔, 류지아, 김단.
음악 윤아성, 음향효과 이용문, 기술 조성도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제작비 지원,
국립무형유산원의 자료 지원으로 EBS가 기획, 제작하였습니다.
요약정보

세계 각국의 해외공연을 통해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평생을 애쓰며 가야금산조의 전승에 크게 이바지한 가야금 산조 보유자 이영희의 생애를 담은 오디오 다큐드라마.

* 국립무형유산원의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채록사업’에서 확보한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유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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